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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컬100>과 공정의 문제

 

넷플릭스의 인기 서바이벌 예능 프로그램인 <피지컬100>의 뒷말이 많다. 결승전을 두고 논란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관계는 별론으로 하고, 무엇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는지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이 프로그램은 100명을 선발하는 과정에서부터 불법 약물을 투약한 사람(로이더 논란), 남여 신체적 한계에 따른 논란(성별 논란)이 있었다. 뛰어난 사람이라기 보다는 화제성 있는 인물 중에 운동 수행능력이 탁월한 사람들을 뽑다 보니 나온 결과이다. 올림픽도 아닌데, 어쩔TV라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향후 시즌을 계속하고 싶다면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누군가는 구글링 해가면서 시험지를 풀고 있고, 다른 사람은 머릿속에 지식으로만 해야 한다면 관객의 입장에서 볼 때 승패의 재미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피지컬100의 원조격인 고대 로마의 검투사들 역시 갑옷과 무기 밸런스패치는 기본으로 하였다.(무기가 유리하면 갑옷을 가볍게 입어야 했다.)

대학 시절 취업 프로그램을 수강했다가 우연히 방송 촬영에 참여하게 되었다. 사전 예고 없이 뒤에서 방송을 촬영한 것이다. 당시 영어로 진행한 수업으로 기억했는데, 수업권을 무시하고 계속 PD가 원하는 그림이 나올 때까지 억지스러운 설정을 요구했다. 미국에서 오랫 동안 살아온 교포 출신 강사는 화를 참지 못하고 밖을 뛰쳐 나갔다. 그런데 여기서 PD의 반응이 더 재미있었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촬영을 마무리했던 것이다. 마치 이 모든 변수를 계산했다는 것처럼 말이다.

방송에 있어 감독이나 PD는 창조주의 입장일 것이다. 자신의 편집에 따라 출연자의 촬영분량 생사여탈권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영화에는 몽타주 기법*이란 것이 있다. 각각의 장면을 연결시켜 놓아 자연스럽게 하나의 메시지 전달을 유도하는 것이 핵심인데,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예능 프로그램의 '악마의 편집' 역시 몽타주 기법을 사용한 것이다. 즉, 감독(PD)는 자신의 플롯 안에 출연자를 잘 배치하면 원하는 메시지를 손쉽게 전달할 수 있다. 마치 유료 설문조사처럼 말이다.

* (a)남자가 걷는다. (b)여자가 걷는다. (c)화면에 두 사람이 비춰진다. 이 장면을 (c)→(a)→(b)로 바꿔서 붙이면 헤어지는 장면으로 인식될 것이다. (출처 : 나무위키)

미학(美學)에 미메시스(대상에 대한 모방)라는 개념이 있다. 아도르노는 이 의미를 확장시켜 미메시스를 예술에서만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갑자스레 이 단어를 꺼낸 이유는, 예술이 미메시스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부조리를 보여주어야 한다. 이를테면 김기덕의 영화들, 봉준호의 <기생충> 같은 불편함 말이다. 그런데 예술(편의상, '예술'이라 부르자) 외적으로 발생하는 이 공정성 논란에 의해 역설적으로 미메시스가 발동했다. 공정한 승패의 결과는 오로지 편집자만이 정확히 알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기록된 것이 역사의 진실로 남게 되니, 패자의 말은 변명거리 내지 설화로 남게 되는 참혹한 현실을 재현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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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와 거지

  최근 유튜브 등 각종 플랫폼을 통해 <지구마불세계여행>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주요 출연자는 빠니보틀, 곽튜브, 원지 등 유명 유튜버들이다. 1화를 보니 싱가포르에 가게 된 구독자 160만 명의 빠니보틀이 하루 10달러로 여행하기를 기획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예전에 연예인들이 출연해 일주일 간 만 원으로 버텼던 <만 원의 행복>이란 예능 프로그램을 착안했으리라. 선진국이라 여행하기 너무 쉬워서 힘들게 가겠다는데, 나는 실소가 나왔다. 빠니보틀의 광고 수익은 녹스 인플루언서에 따르면 월 2.7~4.8만 달러로 추정된다. 물론 다른 출연자 역시 만만치 않은 수익을 자랑하고 있다. ​ 다른 사람의 연봉만큼 매달 버는데, 만 원의 행복을 찍는다는 건, 마크 트웨인의 유명한 소설 <왕자와 거지>처럼 왕자와 거지의 신분이 뒤바뀐 설정을 떠오르게 한다. 사실 한국 예능 프로그램에는 비슷한 변주가 많았다. 예능의 양대 산맥이라 불리는 무한도전의 김태호 PD*, 1박2일의 나영석 PD가 이런 식의 포맷을 많이 만들어냈다. 즉, 카메라가 멈추면 매니저의 시중을 받고 매달 월세를 받는 건물주 출연자들을 프로그램 안에서는 얼간이처럼 그려내는 그림 말이다. * 그는 <지구마불세계여행>의 연출자이기도 하다. ​ 우리는 TV나 OTT, SNS를 통해 타인의 '보여진' 삶을 관음 한다. 그게 진실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쨌든 우리는 그들이 겪는 제약사항 아래 왕자에서 거지가 된 이들의 '통제된' 장애에 환호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한 끼를 제대로 못 먹는다고 시청자에게 죄책감은 없다. 그것이 허구임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대부분 거지 신세인 우리들은 부자의 옷차림, 부자의 한 끼, 부자의 하룻밤을 흉내 내기 위해 값비싼 명품 백, 오마카세, 호캉스에 카드빚을 지게 된다. ​ SNS 피드에 올리기 위해 열심히 #버튼을 추가해가며 사진을 찍었지만, 그 사진은 손 떨리는 카드 매출전표가 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