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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2 리뷰

 #아바타2 #정신분석 #영화리뷰 #라캉




고래잡이 모비딕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자녀 살해가 메인 테마인 이 3시간 짜리 비극은 전작의 주인공(제이크 설리)이 계속 이방인이자 경계인으로 살아가는데서 기원한다. 

주인공 제이크 설리는 전쟁으로 인한 후천적 장애인으로 이방인이 되었고, 이후 아바타의 삶을 선택하여 다른 유형의 이방인이 되었다. 인간과 나비족 간 혼혈은 손가락 숫자가 다르다는 설정을 한 이유는 그가 인간임을 포기했어도 이방인으로 남게 된다는 극적 장치이다. 미국 이민 2세들이 겪는 애환을 주인공의 자녀들로 투사한다.

나비족은 촉수로 사물들과 교감하는데, 이는 성행위를 연상하게 한다. 인간이 아닌 다른 종, 또는 물건에 대한 사랑은 페티시즘, 수간과 같은 전형적 성도착 증상이다. 나비족의 대타자는 계속해서 같은 종족이 아닌 다른 사물과 교감(성교)을 명령한다. 전통적인 방식의 지루하고 현란한 액션과 전쟁신을 연출하며 폭력과 함께 이것은 새로운 종류의 억압적 탈승화*이다. 

마르쿠제가 프로이트의 유명한 승화를 패러디해 만든 용어로 초자아가 본능을 해방시키라고 억압적으로 명령하는 것, 이를테면 로마의 빵과 서커스 혹은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 3S 정책과 같은 무의식에 강요된 해방 

고래를 닮은 거대 바다생명체인 툴쿤의 신체를 절단하여 불로불사의 묘약을 추출할 수 있는데, 주인공이 속한 나비족은 툴쿤을 사냥할 수 없는 존재로 설정한다. 이는 자본(툴쿤잡이 우주선)이 없는 노동자의 소외를 묘사하는 것으로 해석하면, 인간은 자본가이며 나비족은 노동자라는 계급주의 사상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다만 나비족의 노동을 무해한 평화주의로 포장하여 무산계급의 도덕적 우월성을 내세운다. 침략자로 묘사된 인간 자본가를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반동분자로 낙인 찍는 도구가 바로 툴쿤의 존재 이유다. 

한편, 주인공의 장자는 전투 중 동생을 돕다 숙적인 마일스 쿼리치에게 살해당하고 대타자가 약한 둘째는 살아남는다. 둘째 입장에서는 아버지를 간접적으로 살해한 셈이라, 말 그대로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에 빠졌다. 

반면에 앞서 서술한 악당 마일스는 인간이었을 때 아들인 스파이더를 살려주고 아들은 다시 아버지의 목숨을 구해주는 거래를 하게 된다. 이에 앞서 악당 아들 스파이더가 주인공 설리의 양아들 격으로 설정되었음은 트로이 목마를 연상하게 한다. 이 나비족을 위한 목마는 주인공의 상징적 거세*를 은유한다. 

* 지젝의 해석에 따르면, 상징적 거세는 왕의 타이틀과 실제의 나인 왕 간의 간극을 의미한다. 스파이더라는 존재는 주인공이 지닌 인간과 나비족 간의 틈이다.

결국 아바타는 장애인 제이크 설리의 대타자를 통해 뒤틀린 욕망이다. 나비족은 실재하지 않으나 나비족의 탈을 쓴 설리는 상징계 속의 왕이 되었다 스스로 거세(폐위)되는 것이다. 즉, 나비족이라는 외형은 인간 주체에게 강요된 대타자*이다.

* 원래의 주체가 상징화된 주체를 볼 때 생기는 타자인식으로, 자기가 자기의 타자가 되는 셈인데 주체의 분열로 인하여 결여라는 현상이 발생한다.


<라캉식 등장인물 관계 도식>

  1. 인간은 나비족의 탈을 쓰고 타인을 욕망한다.

인간 제이크 설리(상상계) - 나비족 토르크 막토 설리(상징계) - 망명을 택한 나비족 설리(실재계)

2. 아들을 상실한 어머니 네리티리는 양아들을 살해하여 죽은 아들을 대체하는 사다즘적 망상에 빠진다.

제이크 설리(아버지) - 나비족이 된 마일스(팔루스) - 네이티리(어머니) - 스파이더(양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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