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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솔로

 


요즘 TV 건 OTT 건 방송 플랫폼을 불문하고 짝짓기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 전성시대이다. 이에 관한 계보학을 쓸 생각은 없으므로 생각나는 것만 적어보기로 하겠다. <짝(2011)>에서 유명세를 치른 이 장르는 수년간 잠잠했다가, <나는 솔로>, <돌싱글즈>, <환승연애>,<솔로지옥>,<체인지 데이즈> 등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위대한 빈티지의 해인 2021년에 우후죽순으로 생겨나 각자 시즌을 거듭하며 대중에 공개되어 소비 중이다. 여기에 유튜브 등 개인 방송 채널을 통해 패러디로 재창조되거나 출연진들이 유명세를 치르면서 그 인기가 쉽게 식지 않고 있다.

나는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했다. 왜 남의 연애가 재미있을까? 일단 관음증이다. 첫날밤 창호지를 뚫고 훔쳐봤던 우리 조상의 일화도 있다. 혹은 외국의 어느 공원에서 처음 보는 여성이 제안하는 성관계를 거절하지 않으면 가까운 호텔에서 그녀를 고용한 이들에게 무료로 배우로 캐스팅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일반적으로 모텔에 가정집보다 훨씬 많은 거울이 설치되어 있는 것은 구태여 설명할 필요도 없다. 연애 프로그램은 앞서의 예시와 비슷한 맥락으로 무료, 혹은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타인의 연애를 보여줌으로써 아주 쉽게 성욕의 일부를 충족시켜 준다. 훔쳐보기라는 인간의 욕망을 통해 가장 원초적인 번식욕을 자극하는데 성공한 셈이다.

그런데 이러한 욕망에 대한 자극만으로 2021년을 기점으로 연애 프로그램의 폭발적인 성장세를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물적 토대를 구성하는 사회적인 변화가 클 것이다. 대한민국은 합계출산율 0.80(2021년)으로 연속으로 세계 최저 1위를 달성하였다. 혼인건수(2021년)는 20만이 붕괴되어 전년 대비 약 10% 감소했다. 평균 초혼 연령(2021년)은 남자 33.4세, 여자 31.1세로 전년보다 각각 0.1세, 0.3세 높아졌다.

즉, 흔히 말하는 결혼 적령기를 넘어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는 사람이 매우 많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에게도 짝짓기의 본능이 남아있겠지만 아마도 경제적인 이유를 통해 욕망이 좌절되었다. 서울 아파트 가격(부동산 R114)은 지난 20년(2002~2021년) 동안 419.42% 올랐다. 보통 결혼할 때 집을 남자 쪽에서 마련하는 한국의 풍조는 평범한 수입과 자산으로는 결혼을 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리게 된 것이다.

집값이 상승하게 된 원인이 무엇일까? 바로 현재 MZ 세대라고 불리는 20~30대의 부모들이 저금리 시대의 황혼을 맞이하여 수십 년간 벌인 부동산 투기의 마지막 챕터이다. 아이러니하게 그들이 보유한 주택의 상당수는 아들 뻘 되는 MZ 세대에게 고점 매도했다. 그리고 현재는 금리 상승기를 맞아 집값이 서서히 추락하고 있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산다는 영끌족은 영혼을 은행에 저당 잡혔고 결혼은 파탄으로 마무리된다. 한국의 조이혼율(인구 1000명당 이혼율)은 2021년 기준 2.0명으로 1991년 1.1명보다 2배 가까이 높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16) 회원국 중 우리나라가 이혼율 9위, 아시아에서는 1위다.

과거에는 결혼했을 법한 사람들은 결혼하지 않고, 결혼한 사람은 이혼하는 살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어느새 길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어린이 보호구역 같은 초등학교를 제외하고는 어린이들을 구경하는 것도 쉽지 않다. 민족의 종언을 목격하고 있는 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한반도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추세는 꺾이지 않고 있다.

정부에서는 당연히 인구통계학적 문제점을 인식했기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다. 지난 정권인 문재인 정부가 5년간 쓴 저출산 대책 예산은 2017년 20조였던 것이 2021년에는 43조로 무려 2배 이상이 늘어났다. 2021년 한 해 예산 총 지출의 7.1%가량이 저출산 대책에 쓰였다. 그런데 출산율은 앞서 서술한 바와 같이 세계 최저인 0.8을 달성했다. 참으로 놀라운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출산에 대한 거부는 거꾸로 연애에 대한 관심으로 전환된다. 마치 가문을 위해 의무적으로 아이를 낳은 귀부인이 자신의 애인을 몰래 만들듯이 말이다. 어쨌든 이 시대의 한국에는 출산의 의무가 사라졌다! 어찌 보면 종교 혁명이나 공산주의 혁명보다 더 혁명적인 사례가 아닐까 싶다. 먼저 가족을 제외하고는 결혼 왜 안 하냐는 손윗사람의 질문이 사라졌다. 그리고 결혼한 경우에 아이는 언제 갖느냐는 질문도 실례가 되었다. 결혼과 출산이 자위(自慰)와 같이 사회적 터부가 된 셈이다.

반대로 연애는 그 어느 시대보다 대중화되었다. 독신이면서 연애를 하지 않고 있다면 무언가 하자 있는 사람으로 낙인 받기 십상이다. 즉, 연애는 이제 새로운 강박이 되어버린다. 지젝(Slavoj Zizec) 식 표현으로는 새로운 억압적 탈승화인 것이다. 프로이트가 승화 이론을 통해 공격성 등을 스포츠로 변형시키는 것을 설명했다면, 거꾸로 탈승화는 욕망을 이행하라고 강요하는 사회적 압력을 말한다. 연애가 권장되는 것이 바로 그 사례이다. 연애에 부적합한 사람은 연애가 쉬운 사람보다 훨씬 많은 수로 존재한다. 각자의 성적 매력의 정도가 상대적으로 차이 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TV나 OTT 프로그램에 일반인들이 출연하여 대중 앞에서 이성에 매력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 휩싸인다. 실제로 <나는 솔로>의 전신인 <짝>은 출연진의 자살로 프로그램 자체가 폐지된 바 있다.

이러한 개인적 비극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나는 솔로'가 아니라 내가 TV 채널을 통해 응시하는 '네가 솔로'인 것에 안도한다. 적어도 내가 연애를 쉬고 있거나 기혼자라고 하더라도 TV를 통해 관음증을 충족시키는 동안에는 탈승화의 압력에서 벗어난다. 시청자들은 출연자들이 자신이 가진 기준에 비추어 열등한 행동을 보이거나 성적 매력이 없는 경우에는 가혹하게 재단한다. 이는 내가 대중으로부터 평가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차단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인민재판의 차례가 나에게도 머지않아 찾아온다면 연애 프로그램의 시청이 즐겁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를테면 카르타고의 정복자인 로마의 스키피오가 머지않아 자신들에게 닥쳐올 비극을 예감하고 비통해 하듯이 말이다. TV나 OTT 프로그램은 끊임없이 검투사를 풀어놓고 자신은 판옵티콘(원형 감옥) 위에서 피 튀기는 연애를 지켜보도록 대중에게 빵과 서커스를 제공한다.

다른 측면에서는 (경제적 이유로 인한) 후천적인 불임 가능성을 숨기기 위해, 라캉(Jacques Lacan) 식으로 표현하자면 거세 불안을 달래기 위해 연애 프로그램이라는 새로운 유형의 대타자를 세웠다. 대타자는 상징계의 초월성과 법을 대표하며 언어의 기원이기도 하다. 프로이트 식으로 표현하면 초자아와 유사하다. 일단 연애 프로그램은 대체로 비슷한 서사 구조를 가지고 있다. 출연자 간의 자기소개를 포함한 탐색전, 이후 몇 번의 데이트 기회, 고백을 통한 최종 선택이 그것이다. 즉, 마치 한국에서 결혼을 준비하려면 스 드메(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를 빠뜨리면 안 된다고 교조적으로 작동하는 여자들의 강령처럼 말이다.

자기소개의 단계에서는 자신이 왜 매력적임에도 불구하고 솔로인지에 대한 역설에 대해 논증해야 한다. 매력적인데 솔로일 수 있다는 것을 납득시키는 것은 당연히 어려운 일이다. 대중은 자신의 연애 경험을 통해 이미 출연진을 선험적으로 비판하게 된다. 만일 이들이 지나치게 매력적이라면, 방송을 위해 자신을 홍보한다고 정의 내린다. 그리고 그렇게까지 매력적이지 않다면 하자가 있는 사람이라고 정의 내린다.

출연진들에게 방송 포맷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인당 복수의 데이트 기회가 주어진다. 여기에서 양극화가 벌어진다. 앞서 말한 매력적인 이들은 이미 출연의 진정성에 의심이 간 상태이지만, 많은 이성에게 선택받고 데이트 기회가 넘쳐난다. 자연스럽게 이들을 위주로 방송은 데이트 장면을 송출해 준다. 선택받지 못한 매력이 없는 출연자들의 비참한 모습은 대비시켜 카메라의 앵글에 담는다. 이성에 어필할 수 있는 외모에 따라 연애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암시한다. 마지막으로 최종 선택을 통해 이들의 커플 성사 여부가 공개된다.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게 대체로 성적 매력이 높은 사람들 간에 짝짓기가 이루어진다.

연애 프로그램은 연애라는 향락(주이상스)을 환상으로 전이시킨다. TV는 무질서한 연애에 일종의 법칙을 부여함으로써 백만장자가 되는 법과 같은 처세술, 성공학의 외형을 갖추었다. 그런데 이 연애 프로그램이라는 대타자는 거세 불안에 시달리는 남자를 환상적으로 거세하고 남근을 선망하는 여자에게 스스로 타자로 위장하게 만든다. 연애 프로그램의 끝에는 커플보다는 인기남에게 데이트권을 빼앗긴 남자 출연자, 그리고 몇 안 되는 인기녀를 따라 하는 여자 출연자가 훨씬 많이 남게 된다. 그리고 대중의 일부는 스스로 연애 프로그램의 출연자가 된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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