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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더 글로리> part2리뷰

 ※ 스포일러 주의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 파트 2가 공개되었다. 파트 1을 보고 리뷰를 남겼는데, 결말까지 보고 나니 비로소 작가의 속내가 그려졌다. 김은숙 작가는 무엇을 원하는가?

톨스토이의 장편소설 <안나 카레니나>는 안나의 중혼이 서사의 대부분이다. 혼인관계를 유지한 채로 태어난 안나의 사생아를 거둬들인 그녀의 남편 카레닌은 가족에서 소외되어 있다.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는 또 어떤가? 그녀의 악덕을 위해 그녀의 남편인 샤를 역시 투명 인간으로 그려졌다. 프로이트도 인용하는 고명한 로마법의 정형 표현 "어머니는 그 무엇보다 확실하나, 아버지는 항상 불확실하다 'Mater certissima, pater semper incertus.' 이 떠오른다.

이 드라마에서 악역인 박연진의 남편 하도영은 어떤가? 그는 현행 결혼제도의 최대 피해자이다. 최후에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하지 않고 상간 남의 아이를 거두는 모습은 마치 상기에 기술한 카레닌의 행적을 보는 듯하다. 안나는 기차에 몸을 던져 제 목숨을 바친 것처럼 박연진은 파놉티콘(원형감옥) 아래 들어가 사회에서 사실상 추방된다.

드라마는 악역을 맡은 등장인물들 각각의 성행위를 전시해 놓는데, 반면에 피해자 역할을 맡은 자들의 성관계는 없다. 상상계는 상징계로, 거울을 통해 (인간이라는) 자동인형의 모습은 비친다. 가해자인 박연진은 교성을 지르지만, 피해자인 문동은은 자신의 복수가 완성되는 과정에서 자신의 남자들과 스킨십은 없다. 주인공 문동은은 무라카미 류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여자들처럼 그녀가 부를 때마다 싱글이며 멋진 남자 의사인 주여정, 키핑 해둔 위스키 같은 남자를 손에 쥐고 있다. 다른 한편에는 마치 <색, 계(2007)>에서 탕웨이처럼 하도영을 유혹하고 있다. 하지만 유혹의 끝은 언제나 공허하다. 성관계의 가능성은 열려있지만 복권처럼 늘 좌절된다.

쾌락은 문동은이 당한 고데기 고문과 같이 고통스럽다. 마치 나병환자가 목욕한 물을 기꺼이 마시는 수녀의 목에 걸리는 환자의 피부 조각 같은 것이다. 문동은의 자살 기도는 쾌락이 죽음 충동과 맞닿았다는 것을 실재적으로 보여준다. 어쨌든 악인을 심판하는 것은 여성인 문동은이다. 비정상인, 범죄자, 광인으로 솜씨 있게 구분하고, 나름대로 양형을 통해 처벌을 내린다. 그녀의 복수를 위해 정신병원과 감옥을 적극 활용하는 것은 푸코 식으로 말하면 생명(규율) 정치와 같다.

다시 라캉으로 돌아가면 여성의 향락(주이상스)은 대타자의 향락인 것이다. 좀 더 쉽게 이야기하면 문동은의 향락은 사법 체계의 향락이다. 마지막 장면마저 교도소인 것은 달리 어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따라서 이 드라마는 우리에게 어떤 혁명의 가능성도 제공하고 있지 않다. (복수는 언제나 판사에게 물어볼 것.)

※ 참고문헌 : <야전과 영원>, 사사키 아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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