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왕자와 거지

  최근 유튜브 등 각종 플랫폼을 통해 <지구마불세계여행>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주요 출연자는 빠니보틀, 곽튜브, 원지 등 유명 유튜버들이다. 1화를 보니 싱가포르에 가게 된 구독자 160만 명의 빠니보틀이 하루 10달러로 여행하기를 기획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예전에 연예인들이 출연해 일주일 간 만 원으로 버텼던 <만 원의 행복>이란 예능 프로그램을 착안했으리라. 선진국이라 여행하기 너무 쉬워서 힘들게 가겠다는데, 나는 실소가 나왔다. 빠니보틀의 광고 수익은 녹스 인플루언서에 따르면 월 2.7~4.8만 달러로 추정된다. 물론 다른 출연자 역시 만만치 않은 수익을 자랑하고 있다. ​ 다른 사람의 연봉만큼 매달 버는데, 만 원의 행복을 찍는다는 건, 마크 트웨인의 유명한 소설 <왕자와 거지>처럼 왕자와 거지의 신분이 뒤바뀐 설정을 떠오르게 한다. 사실 한국 예능 프로그램에는 비슷한 변주가 많았다. 예능의 양대 산맥이라 불리는 무한도전의 김태호 PD*, 1박2일의 나영석 PD가 이런 식의 포맷을 많이 만들어냈다. 즉, 카메라가 멈추면 매니저의 시중을 받고 매달 월세를 받는 건물주 출연자들을 프로그램 안에서는 얼간이처럼 그려내는 그림 말이다. * 그는 <지구마불세계여행>의 연출자이기도 하다. ​ 우리는 TV나 OTT, SNS를 통해 타인의 '보여진' 삶을 관음 한다. 그게 진실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쨌든 우리는 그들이 겪는 제약사항 아래 왕자에서 거지가 된 이들의 '통제된' 장애에 환호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한 끼를 제대로 못 먹는다고 시청자에게 죄책감은 없다. 그것이 허구임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대부분 거지 신세인 우리들은 부자의 옷차림, 부자의 한 끼, 부자의 하룻밤을 흉내 내기 위해 값비싼 명품 백, 오마카세, 호캉스에 카드빚을 지게 된다. ​ SNS 피드에 올리기 위해 열심히 #버튼을 추가해가며 사진을 찍었지만, 그 사진은 손 떨리는 카드 매출전표가 숨
최근 글

<피지컬100>과 공정의 문제

  ​ 넷플릭스의 인기 서바이벌 예능 프로그램인 <피지컬100>의 뒷말이 많다. 결승전을 두고 논란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관계는 별론으로 하고, 무엇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는지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 이 프로그램은 100명을 선발하는 과정에서부터 불법 약물을 투약한 사람(로이더 논란), 남여 신체적 한계에 따른 논란(성별 논란)이 있었다. 뛰어난 사람이라기 보다는 화제성 있는 인물 중에 운동 수행능력이 탁월한 사람들을 뽑다 보니 나온 결과이다. 올림픽도 아닌데, 어쩔TV라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향후 시즌을 계속하고 싶다면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누군가는 구글링 해가면서 시험지를 풀고 있고, 다른 사람은 머릿속에 지식으로만 해야 한다면 관객의 입장에서 볼 때 승패의 재미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피지컬100의 원조격인 고대 로마의 검투사들 역시 갑옷과 무기 밸런스패치는 기본으로 하였다.(무기가 유리하면 갑옷을 가볍게 입어야 했다.) ​ 대학 시절 취업 프로그램을 수강했다가 우연히 방송 촬영에 참여하게 되었다. 사전 예고 없이 뒤에서 방송을 촬영한 것이다. 당시 영어로 진행한 수업으로 기억했는데, 수업권을 무시하고 계속 PD가 원하는 그림이 나올 때까지 억지스러운 설정을 요구했다. 미국에서 오랫 동안 살아온 교포 출신 강사는 화를 참지 못하고 밖을 뛰쳐 나갔다. 그런데 여기서 PD의 반응이 더 재미있었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촬영을 마무리했던 것이다. 마치 이 모든 변수를 계산했다는 것처럼 말이다. ​ 방송에 있어 감독이나 PD는 창조주의 입장일 것이다. 자신의 편집에 따라 출연자의 촬영분량 생사여탈권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영화에는 몽타주 기법*이란 것이 있다. 각각의 장면을 연결시켜 놓아 자연스럽게 하나의 메시지 전달을 유도하는 것이 핵심인데,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예능 프로그램의 '악마의 편집' 역시 몽타주 기법을 사용한 것이다. 즉, 감독(PD)는 자신의 플롯 안에 출연자를 잘 배치

너는 솔로

  요즘 TV 건 OTT 건 방송 플랫폼을 불문하고 짝짓기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 전성시대이다. 이에 관한 계보학을 쓸 생각은 없으므로 생각나는 것만 적어보기로 하겠다. <짝(2011)>에서 유명세를 치른 이 장르는 수년간 잠잠했다가, <나는 솔로>, <돌싱글즈>, <환승연애>,<솔로지옥>,<체인지 데이즈> 등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위대한 빈티지의 해인 2021년에 우후죽순으로 생겨나 각자 시즌을 거듭하며 대중에 공개되어 소비 중이다. 여기에 유튜브 등 개인 방송 채널을 통해 패러디로 재창조되거나 출연진들이 유명세를 치르면서 그 인기가 쉽게 식지 않고 있다. ​ 나는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했다. 왜 남의 연애가 재미있을까? 일단 관음증이다. 첫날밤 창호지를 뚫고 훔쳐봤던 우리 조상의 일화도 있다. 혹은 외국의 어느 공원에서 처음 보는 여성이 제안하는 성관계를 거절하지 않으면 가까운 호텔에서 그녀를 고용한 이들에게 무료로 배우로 캐스팅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일반적으로 모텔에 가정집보다 훨씬 많은 거울이 설치되어 있는 것은 구태여 설명할 필요도 없다. 연애 프로그램은 앞서의 예시와 비슷한 맥락으로 무료, 혹은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타인의 연애를 보여줌으로써 아주 쉽게 성욕의 일부를 충족시켜 준다. 훔쳐보기라는 인간의 욕망을 통해 가장 원초적인 번식욕을 자극하는데 성공한 셈이다. ​ 그런데 이러한 욕망에 대한 자극만으로 2021년을 기점으로 연애 프로그램의 폭발적인 성장세를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물적 토대를 구성하는 사회적인 변화가 클 것이다. 대한민국은 합계출산율 0.80(2021년)으로 연속으로 세계 최저 1위를 달성하였다. 혼인건수(2021년)는 20만이 붕괴되어 전년 대비 약 10% 감소했다. 평균 초혼 연령(2021년)은 남자 33.4세, 여자 31.1세로 전년보다 각각 0.1세, 0.3세 높아졌다. ​ 즉, 흔히 말하는 결혼 적령기를 넘어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는 사

넷플릭스 <더 글로리> part2리뷰

  ※ 스포일러 주의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 파트 2가 공개되었다. 파트 1을 보고 리뷰를 남겼는데, 결말까지 보고 나니 비로소 작가의 속내가 그려졌다. 김은숙 작가는 무엇을 원하는가? ​ 톨스토이의 장편소설 <안나 카레니나>는 안나의 중혼이 서사의 대부분이다. 혼인관계를 유지한 채로 태어난 안나의 사생아를 거둬들인 그녀의 남편 카레닌은 가족에서 소외되어 있다.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는 또 어떤가? 그녀의 악덕을 위해 그녀의 남편인 샤를 역시 투명 인간으로 그려졌다. 프로이트도 인용하는 고명한 로마법의 정형 표현 "어머니는 그 무엇보다 확실하나, 아버지는 항상 불확실하다 'Mater certissima, pater semper incertus.' 이 떠오른다. ​ 이 드라마에서 악역인 박연진의 남편 하도영은 어떤가? 그는 현행 결혼제도의 최대 피해자이다. 최후에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하지 않고 상간 남의 아이를 거두는 모습은 마치 상기에 기술한 카레닌의 행적을 보는 듯하다. 안나는 기차에 몸을 던져 제 목숨을 바친 것처럼 박연진은 파놉티콘(원형감옥) 아래 들어가 사회에서 사실상 추방된다. ​ 드라마는 악역을 맡은 등장인물들 각각의 성행위를 전시해 놓는데, 반면에 피해자 역할을 맡은 자들의 성관계는 없다. 상상계는 상징계로, 거울을 통해 (인간이라는) 자동인형의 모습은 비친다. 가해자인 박연진은 교성을 지르지만, 피해자인 문동은은 자신의 복수가 완성되는 과정에서 자신의 남자들과 스킨십은 없다. 주인공 문동은은 무라카미 류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여자들처럼 그녀가 부를 때마다 싱글이며 멋진 남자 의사인 주여정, 키핑 해둔 위스키 같은 남자를 손에 쥐고 있다. 다른 한편에는 마치 <색, 계(2007)>에서 탕웨이처럼 하도영을 유혹하고 있다. 하지만 유혹의 끝은 언제나 공허하다. 성관계의 가능성은 열려있지만 복권처럼 늘 좌절된다. ​ 쾌락은 문동은이 당한 고데기 고문과 같이 고통스럽다. 마치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의 안티고네

  (스포일러 주의) 넷플릭스 인기 드라마 <더 글로리>는 학교폭력을 당한 주인공의 복수를 다루는 내용이다. 인기 요소로는 권선징악이라는 흥부놀부 전에서 한 발자국도 발전하지 않은 단면적인 인물 설정 때문일 것이다. 거기에는 부자는 사악하고 가난한 자는 선하다는 계급주의 논리가 들어간다. 여기에 미성년자 폭력에 관대한 국내 사법체계에 대한 불신이 있고, 부자가 망해가는 모습에 기뻐하는 샤덴프로이데 (Schadenfreude) 에 열광하는 방구석 1열의 관객들이 있다. 어찌 보면 미 대선과 맞물려 개봉 취소까지 된 영화 <더 헌트(2020)>의 설정처럼 부자가 가난한 자를 재미로 핍박(사냥) 하는 설정은 일맥상통한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더 헌트>와 같은 정치적 은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자신에게 영구 화상을 입힌 가해자들을 찾아 함무라비 식의 사적 징벌하는 계획과 실천이다. 그 점은 오히려 영화 <킬 빌(2003)>이나 <존 윅(2014)>의 설정과 유사하다. 헤겔이 <정신현상학>에서 그리스 소포클레스의 비극인 <안티고네>를 가지고 와 법과 도덕의 대립의 예시를 가져왔다. <안티고네>는 외숙부 크레온이 오빠의 시신의 매립을 법으로 막자 이를 어기고 그의 시체를 매장하고 자살하는 내용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매장의 의미가 영원한 안식을 위한 필수라는 점을 상기하면 자신의 양심을 지키려고 법을 어기는 것을 의미한다. 헤겔은 인륜성이라는 개념을 가져와 도덕과 실정법을 화해시키려고 하지만, 이 드라마에는 어떤 인륜성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심연과 같은 주인공의 르상티망(원한)이 보인다. 아직 시즌 2가 개봉되지 않아 결말을 알 순 없지만, 이 시점에서 섣불리 <더 글로리>의 감상평을 안티고네에 대한 평가를 통해 대신한다. 슬라보예 지젝은 안티고네가 광기의 주체, 괴물의 윤리학을 구현하는 안티 하버마스라고 주장한다. 주인공은 화상을 통해 외상(트라우마)를 가진 괴